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문단 편집) == 평가 == ''''러시아군 전략의 아버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신중하고 상세한 전략 구상과 과감한 전술기동을 통해 승리를 쟁취해내던 장군이라 할 수 있다. 수보로프 스스로가 저서에서 이러한 부분들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한 군의 정예화와 단결력 고양을 중시한 인물이었다. 본인 역시 체력 단련에 힘써 강건한 신체를 자랑했다고 한다. 당장 말년에 직접 말타고 알프스를 넘던 양반이다. 결국 건강을 잃어 사망하긴 했지만 이미 나이가 70이었으니 평생 전장에서 산 인물로서는 천수를 누린 셈이다. 다만, 전쟁에 있어 아군의 승리를 이끌어내려는 마음이 지나쳐 적에게 무자비했다. 투르크군이 농성하던 이스마일[* 현재 [[우크라이나]] [[오데사 주]] [[부자크]] 지역에 있다.] 요새를 함락시킨 뒤 요새 내부의 무슬림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3일 동안 학살한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 당시 학살당한 무슬림의 수는 무려 4만 명을 넘나들었다. 폴란드의 해방 투쟁을 분쇄할 때도 프라가[* 현재 [[바르샤바]]의 한 구]를 함락시키면서 약 2만 명의 폴란드인을 학살했다. 이런 식의 무자비한 학살은 저항의지를 분쇄하는 데 효과를 발휘했으나 후세로부터는 당연히 비판받게 되었다. 수보로프는 동시대 나폴레옹의 1차 이탈리아 전역을 보고 나서 "그는 [[한니발 바르카]], [[알렉산드로스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동급의 위대한 지휘관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몇 년 뒤 유럽을 뒤흔드는 나폴레옹의 군사적 능력을 사전에 알아본 것으로 수보로프의 뛰어난 군사적 식견이 드러난다. 다만, 이처럼 높은 평가와 별개로 수보로프는 나폴레옹과 전장에서 만나고 싶어했고, 또한 자신이라면 나폴레옹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참고로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가 있던 시점에서 수보로프는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으며, 만약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수보로프의 바람대로 역사의 대일전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실제 역사에선 나폴레옹이 이집트로 떠났기 때문에 수보로프와 교전한 것은 앙드레 마세나가 되었다. 수보로프의 알프스 산맥을 넘는 작전이 바로 마세나의 프랑스군과 맞붙으면서 시도된 작전이다. 여담이지만, 수보로프는 레프 톨스토이의 저작인 <전쟁과 평화>에서 종종 언급된다. 수보로프가 사망한지 얼마 안되는 시점에서 시작하는 작품으로, 현재 러시아 제국에는 수보로프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예를 들어 볼콘스키의 아버지의 쿠투조프에 대한 평가가 "수보로프에 비하면 택도 없음."이다.) 수보로프 같은 인물이 막아서지 않았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등의 언급들이 나온다. 작중 러시아 인물 중에 유일하게 까임 없이 칭찬만 있다. (종종 전쟁과 평화가 러시아 국뽕 소설이라는 오해를 받는데, 쿠투조프와 바그라티온 외의 러시아 지휘관들 다 똥별로 나오고 쿠투조프와 바그라티온도 능력있기는 해도 단점도 큰 인물로 묘사된다. 유일하게 까이지 않는 장군이 수보로프.) 2008년에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 채널인 [[로시야 1]]의 주최 하에 무려 5천여만 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러시아 역사의 인물을 뽑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이 프로그램은 영국의 가장 위대한 100명의 영국인들과 다른 나라에서 행해지는 다른 유사한 프로젝트들과 비슷하다.) 이 때 수보로프는 8위를 차지했다. 전문 군인으로서 가장 높은 순위이자 10위권에 든 유일한 장군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